자성의 집 이야기/김상욱님의 정신과학

'나는 무엇인가' - 4월 마음강좌

aossaz 2011. 6. 5. 18:35

 

                               나는 무엇인가?

                                             

      ‘나’란 잘 알고보면 단지‘나라는 생각’일뿐입니다. 바로 그 생각에 의해 나의 몸이 만들어지고 내 마음으로 경험됩니다. 이 ‘나’를 우리는 다른 말로 에고(ego), 마음, 의식, 또는 영혼이라 하기도 합니다.

이런 ‘나(가아, 나라는 생각)’는 그 사람이 지닌 의식수준에 따라 여러 의식층 중 특정층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에 따라 그 의식의 층이 다르기도 하고, 개인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지닌 의식의 크기에 따라 그 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나’의 크기 또는 범위(의식수준 또는 의식의 크기)는 그 ‘나’가 지닌 ‘사랑’과 ‘수용’의 크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사람의 사랑과 수용의 크기가 크면 보다 높은 층에 있게 되고, 반대로 사랑과 수용의 크기가 적은 경우 낮은 층에 머물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그의 영혼이 자신의 마음, 상대방의 마음,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 또는 현실 등을 얼마나 수용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나’의 크기와 그가 속한 의식의 층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그가 우주의 모든 혼을 껴안고,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면 그는 의식의 모든 층을 초월한 바로 ‘참나(다른 말로 진아, 무, 공, 있음(Being)의 자리, Buddha area)의 자리’.....곧 ‘하나님의 자리’에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의식의 어느 한 층에 있게 되고(가아로서 지금 머물고 있는 층), 그 의식의 층과 ‘참나의 자리’사이의 간격과 차이(힘의 차이)로 인해 여러가지 삶의 현상이 생기게 되고, 그는 가아로서 이런 사건들을 삶속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즉 자신이 속한 의식층보다 상위층에 상위자아를 두게 되고, 그로 인해 그 상위자아가 지닌 의도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그가 자신의 상위자아의 의도와 작용에 대해 “저항하느냐? 아니면 수용하느냐?”에 따라 그의 의식수준이 달라지게 되고 그가 경험하게 될 사건의 내용이 달라지게 됩니다. 만일 그가 그 의도에 저항하게 되면 그는 상위자아가 의도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지만, 반대로 상위자아의 의도에 자신을 내맡기고 그 경험을 있는 그대로 - 무판단으로 - 수용하게 되면 그의 의식층은 상승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는 이전의 상위자아가 의도했던 사건을 경험해야 할 이유나 문제가 사라지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삶의 원리이자 시스템입니다.

나는 이 강연을 통해 기존의 여러 종교에서 주장한 것처럼 가아를 넘어 그 ‘진아’로 가는 것이 그렇게 ‘험난’하지 않으며, 그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내가 현재 붙잡고 있는 ‘나’의 밖에서 ‘나’를 바라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나’의 안에 들어가 있게 되면 나와 상대방이 나누어지고, 이렇게 생긴 상대성(이원성)을 통해 상대방과 갈등이나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이원성을 극복하고 ‘참나’로 다가가기 위해서 결국 ‘나’의 밖으로 나가는 과정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있음’의 참된 의미입이다.

“수없이 나고 죽는 그 오랜 시간동안 네가 믿어 왔고, 아직도 믿고 있는 ‘나(가아)’를 왜 자꾸 ‘나(진아)’라고 고집하느냐? 이제 놓아라~”

이 말씀처럼 내가 아직도 잡고 있는 그 ‘나’를 놓으면 나와 상대방의 이원성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마음을 나와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나’는 있지만,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있어‘상대방’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나를 차츰 놓아감에 따라 나는 상대와 하나가 되고 참된 자유를 얻고 초연한 삶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나(가아)’를 놓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잡고 집착하고 있는‘나(가아)’의 밖에는 ‘나’를 제외한 그 수많은 ‘나들(우주)’이 우주 끝까지 존재하고 있고, 그 우주 또한 지금도 확장하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그 큰 우주와 상대를 하시겠습니까?

바로 이런 의미에서 ‘깨달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 과연 그 깨달음에 도달하게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몇 가지를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구부리지 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나’를 통해 자꾸 새로운 ‘나’를 만들어(‘나’란 생각, 나의 성향, 나의 신념과 가치관, 집단의식 등) 상대방이나 세상을 판단‧분별하고 의미를 부여함(구부림)으로써 그 ‘나’가 더 경험해야 할 공간과 시간(공간장, 끌개장)을 만듭니다.

그리고는 그‘나’를 그 속에 다시 밀어 넣어버림으로써 자신이 경험해야 할 대상이나 사건들을 만들게 되어(창조의 의미, ‘구부림’의 의미) 결국‘참나’의 자리에 가는 영혼의 여정을 늦추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의미에서 ‘구부리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구부리지 말고 ‘참나’의 순수의도에 따르고, 이미‘나(가아)’가 과거에 만든 것들에 대해서는 만든 그 공간장 자체를 수용하고 즐김으로써 스스로 구속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그 끌개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생각과 의도를 구부리지 말고 쫙 펴십시오..... 비유적으로 말해 항상 ‘왕창 큰 다리미’가지고 다니시다가 구부릴려고 하면 그 다리미로 자신의 생각을 쫙 펴버립시요...

그렇게 하면 절대계(무와 공, 진, 또는 존재계)와 상대계(환영, 허, 현상계)가 갈라지게 됩니다. 그리고나면 그 ‘나’는 절대계와 현상계의 사이를 들락날락하게 되는데....이제 그‘나’가 왜 있어야 하는지의 이유(“과연 그 ‘나’가 내게 필요한가?”)를 지우십시오. 그래서 두 번째는 바로 ‘지워버려라’입니다.

2. 지워버려라

현상계는 존재합니다. 그럼 과연 그 현상계는 어떤 상태로 존재할까요? 그 현상계는 환상(허상, 환영)의 세계로 존재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은 의식의 층에 있어 수많은 ‘9들’의 의도들(상위자아의 의도들) - 9999999999 - (ex. 소위 엄청 복잡한 세상살이)에 의해 나타나고 움직이게 됩니다(ex. '프로그램'을 통한 상위자아 시스템의 의도와 작용). 이렇게 수많은 9들이 계속 현실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럼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런 세상살이에서 ‘참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자 잘 보십시오....

이런 9들의 의도들 - 999999999 - 에 ‘1’을 더하면 어찌될까요?....

이 9들은 모두 0으로 바뀌게 됩니다(1000000000).

여기서 방금 더했던 그‘1’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 ‘1’은 바로 ‘하나’이며 ‘사랑’입니다(cf. 나 하나의 사랑).

즉 세상에 그 어떤 일이 내게 닥쳐오더라도... 그것이 무엇이더라도.... 나의 사랑(1)과 만나게 되면 다 해결되어 버리는 겁니다.

다시 말해, ‘1’, ‘사랑, 수용, 내맡김, 가아(ego)의 용해’ 등을 통해서만이 ‘나(가아 - 개체로서의 ‘나’)’를 넘어 참된‘나’(진아 - 전체의 나, 하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1’(사랑)이 되지 못하고, 2에서 9의 마음(신)의 조화와 변덕(상위자아의 의도, 프로그램)에 의해 그 의식층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한평생을 삽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어떤 고난도 아픔도 시련도....바로 이 ‘하나(1)’ 앞에 서면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되고자 하는 마음(一心)’의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구부린 채로 그 ‘나’를 고집하고 집착하니...2..3..4...5....6...7...8...9 속에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열고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하나 덧붙여 말씀드리면

여러분에 대한 신의 계획...

의 사랑과 안전을...

의 축복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다 받아들이십시요’

다 받아들이고 맡겨버리면 그‘나’는 없어집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늘 신의 뜻보다는 ‘나’의 뜻을 앞에 두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의 뜻을 나의 뜻(부정하고 회피하거나 욕심으로 움켜잡고 싶을 마음)보다 앞에 두고 살아가십시오.

바로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나는 내가 규정짓는 모습 그대로의 모습이다.

내가 나의 한계와 의미를 규정지을 때

그 모습으로 나는 나타날 것이다.

고체, 액체, 기체, 무체로서 나는 있으며

형상과 비형상으로 존재한다.

모든 것이 그러할지니

나 아닌 것이 없으며

나를 부정하는 의식안에는

내가 있지만 나는 없을 것이다.“

- 깨달음의 향기 중에서 -

사실 변화무쌍한 마음(신)의 계획이고 마음이 일으킨 현상들(2~9까지의)에 대해, 그리고 왜 그런 현상들이 여러분에게 필요한지의 이유를 알 필요도 연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머물지 말고 넘어오십시요...

.그럼 여러분은 분명히 커져 있습니다.

신의 계획도 알고 보면 ‘여러분이 사랑이 되어 고통을 접고 되돌리게 하기 위해서 모든 마음의 현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에 대한 ‘신의 사랑’입니다. 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조건 주고 있는 이 모든 사랑이 만일 죄가 된다면 내가 그것을 다 뒤집어 쓰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면서 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나이다....”라고 한 말씀에는 세상의 죄를 다 뒤집어쓰더라도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참된 행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럼 아까 말한 숫자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면 한가지 의문이 생길겁니다. 1000000000이란 숫자의 맨 앞에 있는‘1’이란 과연 무엇이며, 이 ‘1’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1과 0은 다르게 보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무슨 의미인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바로 ‘虛眞不二’입니다.

0은 진아이고 1은 가아입니다. 이 둘이 다르지 아님을 아십시오...

그러기에 ‘있되 없음’.....있지만 없는 것으로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1’(사랑)으로 확인을 했는데 더 이상 그 ‘1’을 붙잡을 이유가 있습니까?

그러니 “하나가 되십시오”

0과 1을 여러분의 총으로 관통시켜 버립십시오...

빵~........................휴~

그렇게 여러분이 정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모든 것 바깥에서 보고 있는데

나오고 돌아가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 생각이 왔다갔다 할 뿐...

지금 내가 나의 생각으로 나의 상태가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미지이니

언젠가 완전해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것이다

내가 지금 나라는 생각으로 지금 현재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러면서 그 현재를 불완전으로 보고 규정짓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지금 이 순간 그 밖에 있으면

지금 이 순간 그 안에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은 잘 돌아가고 여여하다.....

그래 참으로 그러하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고 있는 그대로가 여여하다.

부처께서 이것말고 또 다른 말씀을 하셨겠는가

또 다른 말씀이 필요했겠는가

나는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있다. 지금 여기에”

*‘나’를 구부리는 것............우주의 창조(의도).......내가 ‘나’로서 ‘또 다른 나’를 더 입히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니 “그저 되어져 있음에 감사하면 됩니다.”

* ‘신의 영묘함’이란 “그 사람이 알고 있는 만큼 나누어주고, 아는 수준에 맞게 경험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불완전함이 허용되는 것에 대해 감사하십시요.

* 어차피 깨달어도 살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마음(신)의 뜻(계획)을 느끼고(이해),

맛을 즐기고,(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힘을 창조하십시요...

다리미로 마음을 쫘악 펴고...나에게 ‘사랑밖에 없다’는 마음으로...사십시요.

그리고 ‘사랑’이란 그 어마어마한 힘을 혼자 쓰고 내버려두기에 아까우니 이웃에 퍼다 날라주십시요.

지금까지 살아온 각자의 길이 늘 ‘최상의 선택’입니다(“지금은 바로 우주가 그래할 때”). 그러니 신의 계획을 온전히 믿으십시요. 지나간 과거에 대해 지금의 내 생각으로 ‘이러쿵 저러쿵’하는 생각의 군더더기’를 일으킬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신은 늘 여러분에게 ‘최선의 선택을 해주었다’(自-神이 선택한 최상의 길 - 영혼의 여정). 즉 그것이 최상이었다는 것을 믿는 순간 그‘나’는 사라지고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급하게 마음먹지 마시고.....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 되는대로... 신께 내맡기고 감사하십시요...

그러면 언젠가 여러분은 마음을 다넘고.......바로 그 곳에 도달하게 될겁니다(기다림과 내맡김).

그리고 기도하십시요... ‘임’을 향한 영혼의 기도....

순수함에서 우러나오는 ‘이제는 당신과 하나이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요